어제 제7회 고령군수기 경북 친선 궁도대회 단체전 참가를 위해 집사람과 좀 일찍 출발을 하였습니다.
개사 20분전까지 습사를 허용하였기에 좀 일찍가서 한 순이라도 내고 경기에 참가하겠단 의지로 새벽 5시 40분에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타고 고령IC로 내렸습니다.
뉴제우스모텔 방향으로 길을 잡고 가니 금방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 시각에도 송암정 사우분들이 입구 회전교차로까지 나오셔서 출전하는 궁사들 차량을 안내하고 계셨고 조그만 다리를 건너가니 주차통제를 하고 계셨습니다.
과녁이 동향(東向)이라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면서 곧 눈이 부시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먼저 도착하신 분들이 심판관의 통제에 따라 습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준비해서 2순을 내어보니 그런대로 화살이 잘 날아가기에 습사를 마친 분들과 같이 과녁에 화살을 주우러 갔습니다. 오늘 날씨가 무지 덥겠구나 생각이 되었습니다만 수은주가 34도까지 올라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개인전과 단체전을 겸한 3순 경기를 무려 34도나 되는 더운 날씨 속에서 마치니 그다지 크게 성적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순서대로 활을 쏘고 가만히 기다리는데도 반팔은 입은 팔에서 땀이 솟아나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11시에 개회식 행사를 진행하고 식사는 송암정에서 접수할 때 식권을 배부했었는데 바로 옆 천막에서 추어탕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작대접수때 주는 참가기념품을 여기는 개회식이 끝나고 배포를 하였는데 고령에서 유명한 딸기로 만든 1kg짜리 쨈을 1병씩 주었고 아마도 개회식 이전에 가시는 분들을 방지하는 차원이 아니었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희는 다음날 승단을 위해 1박을 하는게 더 낫겠다 생각되어 일찌감치 숙소를 고령축산물공판장 근처로 예약을 해 두었기에 이후의 시간은 대가야박물관과 대가야왕릉전시관, 좀 떨어진 우륵박물관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고령(高靈)은 대가야 도읍지로 경주의 문무대왕면처럼 읍(邑) 이름을 고령읍에서 대가야읍으로 바꾸었습니다. 행정동 이름을 독특한 이름으로 바꾼 곳이 강원도 영월의 한반도면, 경북 포항의 호미곶면이 언뜻 떠오릅니다.
가야금을 만든 우륵이 이곳 사람이고 대가야의 유물들이 이곳 저곳에 산재하여 신라의 유적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경주처럼 그것만으로도 고도(古都)의 품격을 유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인 것 같습니다.
대가야박물관 뒷편에 대가야의 옛 도읍인 대가야읍을 둘러싸고 있는 주산(主山)의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에는 당시의 왕과 왕족을 비롯한 귀족들의 무덤 700여기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고분군으로 다른지역의 평지에 위치한 고분들과 달리 산 능선의 꼭대기나 경사면에 자리한 대가야의 톡특한 입지를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산위에다 능선을 따라가며 고분을 조성했는지 참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지산동 고분군은 곧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대가야박물관의 입장료 2천원(1인당)으로 대가야왕릉전시관, 우륵박물관을 3곳의 관람이 가능하였습니다. 박물관은 지난 5월 6일에 재개관한 박물관에는 고령 본관동 고분군 기획전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대가야국의 시조인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은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의 형으로 서기 42년 대가야국을 건국하였으며 철의 왕국 대가야는 이진아시왕으로부터 562년 9월 신라에 패해 멸망당한 도설지왕까지 16대 520년의 역사를 누렸다고 합니다.
지산동고분군은 대가야가 고대국가로 성장 발전하는 400년경부터 신라에 멸망당하는 562년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주로 구덩식 돌방무덤이고 왕을 비롯한 지배층과 다양한 신분층의 무덤들이며 가야 지역 최대 규모의 고분군으로 이승과 저승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내세사상과 순장(殉葬)을 비롯한 장례문화, 탁월한 경관 우수한 토목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1977년에 발굴된 44호분은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된 최대규모의 순장무덤인데 으뜸돌방과 함께 2개의 딸린돌방을 배치하고, 그 주위로 32기의 순장덧널을 만들어 모두 40명 이상의 사람이 순장되어 대가야가 가장 국력이 컸을 때 만든 왕릉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순장(殉葬)으로 같이 묻히신 분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리되셨나 모르겠습니다.
한참을 이동하여 고령교육지원청 부근에 있는 우륵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입구에서 대가야박물관 입장권을 보여드리고 들어가니 해설하시는 해설사분이 전시되어 있는 순서대로 친절히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가야금은 1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전통악기로 대가야 사람의 얼과 정신이 담겨있다고 하며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고 연주한 곳이 우륵박물관이 위치한 곳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정정골이라 불리는데, 우륵과 제자들이 가야금을 연주하는 소리가 정정하게 들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가야금을 제작하는 전문 장인이 우륵국악기연구원을 운영하고 있어 이곳에 오면 가야금 연주와 제작을 직접 체험해 볼수도 있다고 하는데 하필 이날은 아쉽게도 개방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가야금은 종류에 따라 구조가 다른데 정악을 연주하기 위한 정악가야금과 민속악을 연주하기 위한 산조가야금이 있다고 합니다. 가야금은 악기의 몸통과 12현, 현을 지탱해 주는 안족(雁足)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악가야금은 부들은 매는 부분이 양의 귀와 닮아 양이두(羊耳頭)라고 하며, 산조가야금은 봉황의 꼬리와 같다고 하여 봉미(鳳尾)라고 부른다 합니다.
가야금의 뒷면에 소리의 울림을 위한 울림구멍이 있는데, 정악가야금은 크고 산조가야금은 작다고 하였습니다. 요즘은 25현 가야금도 있다고 하네요.
우륵박물관을 둘러보고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좀 쉬려고 읍내 대백마트 부근에 있는 이디야커피숍에 가니(엔제리너스는 페점하고 나간지 좀 오래된 듯) 경기종료 시각을 기다리는 여자부 2위 호림정 선수와 같이 오신 궁사들이 자리를 하고 계셨습니다.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시상식을 위해 먼저 가시고 저희도 대가야수목원 관람을 위해 회천교를 건너 바로 우회전하니 수목원에 도착했습니다.
봉화의 백두대간수목원 규모에 비할 바는 못되었지만 대가야수목원도 주차장이 넓고 체험하기도 좋았는데 특히 안내소에 문의하면 숲해설(숲체험)을 운영하고 있고 입구에는 고령군 기후·생태·환경체험학교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여러가지 체험중에서도 단풍잎을 이용해 손수건 염색체험을 해 보았습니다. 손수건 사이에 단풍잎을 넣고 투명판 위에서 고무망치로 세게 두드리니 문양이 2곳에 찍혀 나오더군요. 3일후에 식초에 담궜다가 헹구면 단풍 문양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산림녹화기념관 1층에 전시실에서 소나무재선충병 등 설명을 둘러보고 2층 향기전시실로 올라갔습니다. 향수의 역사와 전시된 향수를 둘러보고 향기체험을 해 보았습니다. 복숭아향이 좋아서 꽂혀진 막대로 마스크에 두어방울 떨어뜨렸더니 정말 복숭아향이 좋았고 저녁에 마스크를 벗을때까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고령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습니다. 숙소가 고령축산물공판장 부근이라 체크인 하고 짐을 내려 놓고는 얼른 축공근처의 종유석 전시해 놓은 고령축산가든에서 내일 승단을 위해 고기 한 점하고 긴 하루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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